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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내려놓기

익명77 2022. 11. 4. 23:04

나는 모태신앙이다.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스스로 교회에 간 기억이 있다. 유년부 성가대를 했었다. 중학교때 문학의 밤을 준비하면서 CCM을 알게 되었다. 여러 CCM 가수들의 음반 테이프를 사서 들었고, 라디오도 챙겨 들었다. 고등학교 동아리중 기독교 중창단에 가입하여 열심히 활동했다. 고1,2학년 때 야간자율학습이 없었는데, 방과 후에는 친구들과 연습하고, 방학에는 공연을 준비하며 재미있게 보냈다. 그 와중에 교회에서는 중고등부 내내 찬양팀 활동을 했다. 고3때 교회 여름수련회에서 처음으로 ‘너에 대한 큰 계획이 있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체험을 했다. 고3 동안 매일 아침 큐티를 했고, 수능 공부를 하면서 마음은 항상 평안했다. 다른 친구들은 내가 평안한 이유를 궁금해했었다. 

 

대학교에 가서는 선교단체 동아리에 가입했다. 이 선교단체는 선교와 예배에 강점을 두고있는 오순절계통의 선교단체였다. 선교단체를 통해 국내전도여행도 다녔고, 아프리카로 전도여행을 다녀왔다. 찬양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여러 경험들이 있었다. 선교단체 리더로도 활동 했었고, 3학년 때는 9개월간 대학생 제자훈련도 받았고, 제자훈련 과정으로 시베리아로 전도여행을 다녀왔다. 이 때 랄랄라 방언도 받았다. 교회에서는 계속 싱어나 베이스기타로 찬양팀을 섬겼고, 금요철야예배나 주일 대예배 등에서 반주를 했다. 교회를 통해 제주도 전도여행이나 필리핀 전도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믿음이 훼손될까 다른 것들을 안들으려 했었다. 제칠일안식일교에 다니는 친척이 있었는데, 신천지도 신기해서 알아보고 싶은 마음과 빠지면 어떡하지 걱정되었다. 신천지는 왜저럴까 알아보고도 싶었지만 그 내용에 빠질까봐 일부러 귀를 닫고 살았다. 

 

나는 교회에서 누구에게나 칭찬받고 인정받는 교회 청년이었다. 

 

대학원에서 운이 좋게 군대와 장학금과 취업 3가지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었다. 하나님이 인도하신 자리라고 확신했다. 대학원 시절 동안 청년부 회장으로 활동했다. 졸업 후에는 주중에는 회사 기숙사, 주말에는 모교회에서 교회활동을 하며 지냈다. 이 시기에는 대예배 찬양인도도 했었는데, 종종 전도사로 오해받았었다. 

 

결혼하면서 회사가 있는 지방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작은 교회로 옮겨 지금까지 배운대로 섬기며 베풀고 싶었다. 소개받은 진보적인 개척교회로 옮기기로 아내와 결정했다. 이 교회에서도 나는 찬양인도, 운영위원회, 회계 등으로 섬겼고, 아내는 식사준비와 아이들을 돌보는 부서로 섬겼다. 태어난 아이들도 이 교회에서 태어나 세례받고 성장했다. 작은 교회지만 소중히 여겼고, 많은 성도들이 왔다가 떠나는 가슴 아픈 상황에도 우리 가족 만큼은 떠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어느날 하나님이 계시지 않을 수 있겠다는 의심이 시작되었다. 성경의 기적들이 비상식적으로 느껴졌다. 수많은 질문들이 떠올랐고,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해봤지만 속시원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더이상 기독교의 신앙을 유지할 수 없었다. 






내 인간관계는 모두 교회와 관련된다. 고등학교 동아리 친구들, 선교단체 사람들, 제자훈련 동기들, 어려서부터 같이 자란 모교회 친구들, 지금 교회 목사님과 성도들. 이런 불손한 생각이 꼬리를 물었지만 어디서도 이야기하지 못했다. 내 머릿속은 이 생각 뿐이지만, 특히 예배시간 후에는 더 반발심이 들었지만 교회 나눔시간에 말할 수 없었다. 덕이 되지 못한다. 행여라도 나 때문에 믿음이 흔들리면 큰일이라고 생각했다. 믿지 않는데 찬양인도나 대표기도는 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회계봉사를 좀 더 하다 그마저도 그만 두었다. 코로나는 아주 좋은 핑계가 되어주었다. 

 

배신감이 들었다. 내 젊은 시절이 아까웠다. 동시에 추웠다. 마치 나를 보호해주던 따뜻한 보호막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외로웠다. 누구에게도 이 생각을 말하기 어려웠다. 원래 기독교 신앙이 없는 사람은 이 느낌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잘 믿고 있는 누구에게도 내 이 비뚤어진 생각을 말하면 그들도 마치 믿음이 흔들릴 것 같았다. 아니면 배신자라고 나를 비난할 것 같았다. 그래도 누군가와 논쟁하고 싶었다. 내가 믿게 된 것이 진짜인지 아닌지 알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누가 싸우자고 덤비겠는가. 누가 붙잡고 기도해준다고 하면 그것은 그것 대로 곤란한 일이었다. 나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내가 평생 살아온 믿음을 쉽게 버리지는 못하겠다. 더 알아봐야 했다. 과학적 사실을 가장 많이 받아들인다는 진화적 창조론자들이 있다. 미국에서는 저명한 유전학자 프란시스 콜린스가 시작한 ‘바이오로고스’가 있고, 국내에는 서울대 천문학부 우종학 교수님이 만든 ‘과학과 신학의 대화’가 있다. 닥치는 대로 그 방면의 책을 찾아 읽고, 강의를 들었다. 결론은 그들도 과학과 성경을 연결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종의 기원’이 나온지 160년이 넘게 지났는데, 저명한 과학자들과 신학자들이 과학적 사실과 성경을 아직 연결시키지 못했다. 그래도 그들은 신앙을 버리지 않은 채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그들의 신앙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생각보다 삶의 방식이 바뀌지 않았다. 주일날 교회 가지 않는 것과 더이상 헌금을 하지 않는다는 것 말고는. 이미 기독교적 가치관이 몸에 베어 있어서 어색함을 느끼지 못하거나 아니면 내 삶의 방식에는 기독교적 방식이 전혀 없었거나 인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신앙 안에서 좋은 것들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약자를 위한 마음이나 배려, 겸손 같은 것들이다. 




이 블로그에 기독교 신앙을 버린 사람으로서 그 느낌과 생각을 기록하고자 한다. 기독교에 대한 의심스러운 부분들에 대한 질문을 올릴 것이다. 그에 대한 자유로운 답변과 토론은 환영이다. 막무가내 식의 공격이 없으리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논점을 흐리고 억지를 부리는 댓글까지 유지할 마음은 없다. 

 

그리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공감을 표시하면 기독교 신앙을 내려놓은 사람들끼리 이야기할 수 있는 내용도 있을 것 같다. 

 

여러 공격이 있을 것 같아 익명으로 글을 올릴 것이다. 이곳을 익명의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정체를 아는 사람도 개인적으로 연락 주길 바란다. 신앙과 관련된 인간관계 또한 하나의 주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블로그를 만드는 것 조차 큰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제 어딘가에는 말해야겠다. 누가 보든 안보든 내 상황과 느낌과 생각을 쓰고 싶다. 믿음을 내려놓는다는 용어도 마땅히 없는 것을 보니 말하는 사람이 정말 없었나 보다.